완벽한 지식 관리 시스템을 만들려다가 정작 배우지 못했다

배운 걸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책을 읽었다. 유튜브를 봤다.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이거 분명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지?”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2의 뇌(Second Brain)’를 추천했다.

“당신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시스템에!”

“이거다!”

완벽한 지식 관리 시스템 리서치

여러 PKM 시스템 도표, Zettelkasten 다이어그램, 복잡한 노트 연결 구조

1개월간의 리서치:

유튜브 영상 50개
–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법론
– PARA 시스템
– Evergreen Notes
– 링크드 싱킹(Linked Thinking)
– CODE 방법론

책 8권 구매
– 『How to Take Smart Notes』
– 『Building a Second Brain』
– 『The Knowledge Project』
– 나머지는 제목도 기억 안 남

블로그 아티클 100개 읽음

노션/옵시디언 템플릿 30개 분석

리서치 소요 시간: 약 60시간

“이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목표: 평생 쓸 완벽한 지식 관리 시스템

선택한 방법론:
– 제텔카스텐 (카드 연결 방식)
– PARA (폴더 구조)
– Evergreen Notes (영구 노트)

1단계: 플랫폼 선택 (2주)

Notion vs Obsidian vs Roam Research

비교표 작성:
| 기능 | Notion | Obsidian | Roam |
|——|——–|———-|——|
| 양방향 링크 | ✅ | ✅ | ✅ |
| 로컬 저장 | ❌ | ✅ | ❌ |
| 그래프 뷰 | ❌ | ✅ | ✅ |
| 템플릿 | ✅ | ✅ | ⚠️ |

3개 다 설치하고 일주일씩 테스트.

결정: Obsidian (로컬 저장 + 그래프 뷰)

2단계: 폴더 구조 설계 (1주)

Knowledge Base/
├── 0-Inbox/           # 임시 노트
├── 1-Projects/        # 프로젝트
├── 2-Areas/           # 관심 영역
├── 3-Resources/       # 자료
├── 4-Archives/        # 보관
├── Permanent Notes/   # 영구 노트
├── Literature Notes/  # 문헌 노트
├── Fleeting Notes/    # 순간 노트
└── Daily Notes/       # 일일 노트

3단계: 태그 체계 (1주)

태그 종류:
#type/ – 노트 유형 (책, 영상, 아티클…)
#status/ – 상태 (초안, 완료, 검토중…)
#topic/ – 주제 (기술, 철학, 심리…)
#source/ – 출처

태그 가이드 문서 작성: 5페이지

북마크 폴더와 태그를 15단계로 설계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4단계: 노트 템플릿 제작 (1주)

템플릿 종류:
– Permanent Note (영구 노트)
– Literature Note (문헌 노트)
– Daily Note (일일 노트)
– Meeting Note (회의 노트)
– Book Summary (책 요약)
– Video Summary (영상 요약)

각 템플릿에 15개 항목.

5단계: 링크 규칙 정립 (3일)

규칙:
1. 양방향 링크 필수
2. 고아 노트 금지 (연결 없는 노트)
3. MOC (Map of Contents) 노트 작성
4. 허브 노트 최소 3개 이상 연결

6단계: 워크플로우 문서화 (3일)

노트 작성 워크플로우:
1. Inbox에 Fleeting Note 작성
2. 24시간 내 Literature Note로 변환
3. 3일 내 Permanent Note로 정제
4. 관련 노트 3개 이상 링크
5. MOC에 추가
6. Archive로 이동

총 구축 시간: 6주

“완벽한 시스템이다!”

클라우드 폴더 구조를 완벽하게 설계했던 때가 생각났다. 시스템 구축이 재미있었다.

시스템 유지가 풀타임 업무가 되었다

복잡한 워크플로우 차트, 체크리스트, 정리 규칙 문서들

실제 사용 시작:

Day 1:

유튜브 영상 하나 봤다.

“노트 작성해야지!”

과정:
1. Fleeting Note 작성 (5분)
2. 어느 폴더? → 고민 (3분)
3. 태그는? → 가이드 확인 (5분)
4. 템플릿 적용 (2분)
5. 내용 정리 (15분)
6. 관련 노트 검색 (10분)
7. 링크 연결 (5분)
8. MOC 업데이트 (5분)

총 소요 시간: 50분

영상 길이: 15분

“뭔가 이상한데…”

1주일 후:

Inbox에 Fleeting Notes 23개 쌓임.

“24시간 내 변환해야 하는데…”

토요일 오후 5시간 투자:
– Fleeting → Literature (15개)
– Literature → Permanent (3개만 성공)
– 나머지는 “나중에…”

2주일 후:

“고아 노트가 생기면 안 돼!”

그래프 뷰 확인:
– 연결된 노트: 47개
– 고아 노트: 12개

12개 고아 노트에 억지로 링크 만들기.

소요 시간: 2시간

1개월 후:

통계:
– 작성한 노트: 127개
– Permanent Notes: 8개
– Literature Notes: 45개
– Fleeting Notes (변환 안 됨): 74개

시간 투자:
– 노트 작성/정리: 주 10시간
– 시스템 유지: 주 5시간
총: 주 15시간

문제:
– 새로 배운 것: 거의 없음
– 대부분 시간을 ‘정리’에 사용
– 정작 ‘학습’은 안 함

Evernote에서 2,847개 노트를 수집했지만 다시 본 건 50개도 안 되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었다.

지식 관리가 지식 습득을 막았다

역설적 상황:

예전 (시스템 없을 때):
– 책 읽기: 주 2권
– 유튜브 강의: 주 10개
– 블로그 읽기: 주 20개
– 머릿속 정리: 잘 안 됨
– 하지만 꾸준히 흡수

지금 (완벽한 시스템):
– 책 읽기: 월 1권 (정리해야 해서)
– 유튜브 강의: 주 2개 (노트 작성 부담)
– 블로그: 거의 안 읽음 (정리 피곤)
– 머릿속 정리: 완벽
– 하지만 새로운 지식 유입 급감

깨달음:
지식을 ‘관리’하느라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다.

지식 관리 시스템의 함정

함정 1: 정리가 학습보다 중요해짐

본래 목표:
– 더 많이 배우기
– 배운 것 기억하기
– 지식 연결하기

실제 행동:
– 완벽하게 정리하기
– 시스템 유지하기
– 규칙 따르기

결과:
배우는 것 < 정리하는 것

비유:
도서관 사서가 책 정리만 하고 책은 안 읽는 것.

Evernote에 노트를 수집만 하고 다시 보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함정 2: 시스템이 너무 복잡함

내 시스템:
– 8개 폴더
– 4개 태그 카테고리
– 6개 템플릿
– 15개 규칙
– 6단계 워크플로우

문제:
노트 하나 작성하는 데 결정 사항 10개.

인지 부담:
– 어느 폴더?
– 어떤 태그?
– 어떤 템플릿?
– 어디에 링크?
– MOC 업데이트?

결과:
노트 작성 자체가 부담이 되어 학습 회피.

함정 3: 완벽주의 덫

노트 하나 작성할 때:

“이 노트는 영구 노트로 만들 만한가?”

“관련 노트를 3개 이상 링크했나?”

“태그가 정확한가?”

“나중에 찾기 쉬울까?”

15분 고민

“아… 그냥 나중에 하자…”

결과:
완벽하게 못 할 거면 아예 안 하게 됨.

함정 4: 과거 정리에 갇힘

주말 루틴:
– 새로운 책 읽기? ❌
– 지난주 노트 정리하기 ✅

이유:
“Fleeting Notes 74개가 쌓여 있어…”

결과:
과거 정리하느라 새로운 학습 못 함.

비유:
냉장고 정리하느라 장보기를 못 가는 것.

클라우드 파일 정리하느라 실제 작업은 못 했던 경험과 정확히 같았다.

지식 관리 시스템을 포기했다

간단한 노트 앱, 자유로운 메모, 체계 없지만 풍부한 내용

3개월 후, 모든 시스템을 버렸다.

삭제한 것:

1. 복잡한 폴더 구조
– ❌ 8개 폴더 체계
– ❌ PARA 시스템
– ✅ 하나의 폴더

2. 태그 체계
– ❌ 4개 카테고리
– ❌ 엄격한 규칙
– ✅ 자유롭게 태그

3. 노트 템플릿
– ❌ 6개 템플릿
– ❌ 15개 필수 항목
– ✅ 빈 노트

4. 링크 규칙
– ❌ 양방향 필수
– ❌ 최소 3개 연결
– ❌ 고아 노트 금지
– ✅ 생각날 때 링크

5. 워크플로우
– ❌ 6단계 프로세스
– ❌ 24시간 규칙
– ✅ 그냥 쓰기

새로운 방법:

원칙 1개:
“배운 건 바로 간단히 적기”

그게 전부.

실제 사용:

유튜브 봤다 → 핵심 3줄 적기 (2분)

책 읽었다 → 인상 깊은 부분 적기 (5분)

생각 났다 → 바로 적기 (1분)

끝.

폴더? 신경 안 씀.
태그? 생각날 때만.
링크? 필요하면.
템플릿? 없음.

역설적인 결과

완벽한 시스템 vs 간단한 메모:

완벽한 시스템 (3개월):
– 노트 개수: 127개
– 정리 완료: 8개
– 주간 투자 시간: 15시간
– 주간 학습량: 책 0.25권, 영상 2개
– 스트레스: 높음
– 지속 가능성: 낮음

간단한 메모 (3개월):
– 노트 개수: 200+개
– 정리 상태: 신경 안 씀
– 주간 투자 시간: 2시간
– 주간 학습량: 책 2권, 영상 10개, 블로그 다수
– 스트레스: 없음
– 지속 가능성: 높음

역설:
시스템을 버리니 더 많이 배웠다.

클라우드 정리를 포기하고 검색만 쓰니 오히려 더 편했던 것처럼, 단순함이 답이었다.

깨달은 것

완벽한 지식 관리의 함정:

1. 도구 > 목적
– 목적: 더 많이 배우기
– 수단: 노트
– 함정: 노트 정리가 목적이 됨

2. 정리 ≠ 이해
– 완벽하게 정리했다고 이해한 게 아님
– 대충 적었어도 이해했으면 됨

3. 복잡함 = 사용 안 함
– 복잡한 시스템 = 안 씀
– 간단한 방법 = 매일 씀

4. 찾을 수 있으면 충분
– 완벽한 구조 필요 없음
– 검색으로 찾을 수 있으면 OK

5. 과거 정리 < 현재 학습
– 지난주 노트 정리보다
– 오늘 새로운 것 배우기가 중요

진짜 지식 관리

언제 시스템이 필요한가?

✅ 시스템 필요:

  1. 전문적 연구
  2. 박사 논문
  3. 학술 연구
  4. 책 집필

  5. 업무 필수

  6. 프로젝트 문서
  7. 업무 지식 베이스
  8. 팀 협업

❌ 시스템 불필요:

대부분의 개인 학습.

대신:

간단한 원칙:

1. 즉시 적기
– “나중에 정리” ❌
– “지금 바로 간단히” ✅

2. 완벽함 포기
– 완벽한 구조 ❌
– 핵심만 적기 ✅

3. 검색 활용
– 복잡한 폴더 ❌
– 키워드 검색 ✅
북마크를 수백 개 폴더로 정리했지만 정작 검색을 더 많이 쓰게 된 것을 떠올리게 했다

4. 링크는 자연스럽게
– 강제 연결 ❌
– 생각날 때만 ✅

5. 정리 < 학습
– 과거 정리 ❌
– 새로운 학습 ✅

나의 현재 방법

도구:
– Apple Notes (가장 간단)
– 또는 아무 노트 앱

구조:
– 폴더 1개

템플릿:
– 없음

워크플로우:
1. 배웠다
2. 적었다
3. 끝

태그:
– 생각날 때만

정리:
– 찾기 힘들 때만

시간 투자:
– 노트: 주 2시간
– 정리: 월 30분

결과:
– 더 많이 배움
– 스트레스 없음
– 지속 가능

실용적 가이드

지식 관리 시작하는 사람:

❌ 하지 마세요:
1. 완벽한 시스템 구축
2. 복잡한 폴더 구조
3. 엄격한 템플릿
4. 태그 체계 만들기
5. 워크플로우 문서화

✅ 하세요:
1. 가장 간단한 노트 앱 선택
2. 배운 것 바로 적기
3. 핵심만 3줄로
4. 완벽함 포기
5. 꾸준히 하기

테스트:

1개월만 해보세요:

A안: 완벽한 시스템
– 폴더, 태그, 템플릿, 규칙
– 얼마나 많이 배웠나?
–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나?

B안: 간단한 메모
– 그냥 적기
– 얼마나 많이 배웠나?
– 얼마나 편했나?

결과 비교하세요.

결론: 배우는 게 먼저다

완벽한 지식 관리의 역설은 명확하다.

문제:
– 시스템 구축에 60시간
– 정리에 주 15시간
– 정작 새로운 학습 급감

해결책:
– 간단하게 적기
– 완벽함 포기
– 배우기 우선

완벽한 지식 관리 시스템을 만드느라 3개월 보내는 것보다, 그냥 간단히 적으면서 책 10권 읽는 게 100배 낫다.

가장 좋은 지식 관리 시스템은 당신이 실제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The best system is the one you actually use.”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계속 쓰는 시스템.

정리는 나중에. 배우기가 먼저.


P.S. 이 글도 완벽한 템플릿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어느 폴더에 저장할지, 어떤 태그를 붙일지 고민 안 했다. 그냥 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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