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렛저널을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한 달도 못 썼다

아날로그만 있으면 집중이 잘 되겠지

“디지털은 산만하다.”
“손으로 쓰면 기억에 남는다.”
“불렛저널이 최고의 생산성 도구다.”

생산성 유튜버들은 불렛저널을 예찬했다. “노션 버리고 불렛저널로 갈아탔더니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래, 나도 불렛저널을 시작하자.

불렛저널 준비

1단계: 공부

유튜브: “불렛저널 시작하기”

불렛저널 창시자 라이더 캐롤:
– 신속한 기록 (Rapid Logging)
– 기호 시스템 (Signifiers)
– 인덱스, 퓨처로그, 먼슬리, 데일리
– 이주 (Migration)
– 리플렉션

“시스템이 깔끔하네!”

Pinterest: “불렛저널 셋업”

발견:
– 예쁜 레이아웃들
– 칼리그라피 제목
– 색깔별 구분
–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 그림, 일러스트

“와… 이렇게 예쁘게 만들 수 있구나!”

2단계: 장비 구매

노트:
– 로이텀 도트 노트
– ₩25,000

펜:
– 미도리 MD 펜 (0.38)
– ₩15,000

색펜:
– 모나미 플러스펜 24색
– ₩12,000

마스킹테이프:
– 세트 10종
– ₩20,000

스티커:
– 일러스트 스티커 세트
– ₩15,000

자:
– 미니 자
– ₩5,000

형광펜:
– 제브라 마일드라이너 10색
– ₩15,000

총: ₩107,000

생산성 장비에 돈 쓴 것과 패턴이 같다.

“이제 완벽한 불렛저널 만들 준비 완료!”

셋업 시작

1월 1일

“새해 첫날, 불렛저널 시작!”

페이지 1: 인덱스

📑 INDEX

Future Log ........... 2-5
January Monthly ....... 6-7
January Daily ........ 8-38

페이지 2-5: 퓨처로그

달력 그리기.
선 긋기.
날짜 쓰기.

1시간 소요.

“와, 퓨처로그 완성!”

페이지 6-7: 먼슬리 로그

1월 캘린더 그리기.

  • 숫자 정렬
  • 요일 표시
  • 중요 일정 기입
  • 컬러 코딩

2시간 소요.

“먼슬리도 완성!”

기호 설명 페이지:

● 할 일 (Task)
○ 이벤트 (Event)
- 메모 (Note)
★ 중요
! 영감
→ 이주됨 (Migrated)
< 예약됨 (Scheduled)

습관 트래커 페이지:

표 그리기.
31일 × 10개 습관.

  • 운동
  • 독서
  • 물 2L
  • 명상
  • 영어

1시간 소요.

습관 트래커 만들었던 것을 아날로그로 또 만들었다.

무드 트래커 페이지:

31일 원형 그리기.
색깔 코드 정하기.

  • 😊 초록: 좋음
  • 😐 노랑: 보통
  • 😢 빨강: 안 좋음

30분 소요.

독서 트래커:

책 리스트.
진행률 바.

30분 소요.

총 셋업 시간: 6시간

“드디어 완성! 완벽한 불렛저널이야!”

사진 찍어서 인스타:
– 좋아요: 200개
– 댓글: “예쁘다” “대단해” “나도 해야지”

1월: 사용 시작

1월 1일

데일리 로그:

● 오늘의 할 일
● 운동하기
● 책 읽기
● 프로젝트 작업

○ 이벤트
○ 친구 약속 7pm

- 메모
- 오늘 컨디션 좋음

기록 시간: 10분

“불렛저널 좋다!”

습관 트래커 체크:
– 운동: ✓
– 독서: ✓
– 물 2L: ✓

무드 트래커: 초록

“완벽한 하루!”

1월 2일

비슷하게 기록.

1월 3일

비슷하게 기록.

1월 7일

1주차 끝.

데일리 로그: 7일 모두 작성 ✓
습관 트래커: 7일 모두 체크 ✓
무드 트래커: 7일 모두 색칠 ✓

“불렛저널 최고야!”

1월 2주차: 균열

1월 8일

아침:
“데일리 로그 써야 하는데…”
“출근 준비 바빠서 나중에.”

퇴근 후:
“아, 아침에 못 썼네.”
“오늘 뭐 했더라?”
기억 안 남.

대충 작성.

1월 10일

습관 트래커:
– 운동: ✗
– 독서: ✗
– 물 2L: ✗

“오늘 다 못 했네…”

체크 안 함 = 빈칸 = 죄책감

1월 14일

2주차 끝.

데일리 로그: 7일 중 4일 작성
습관 트래커: 듬성듬성
무드 트래커: 3일 빠짐

“괜찮아, 다음 주에 잘하면 돼…”

1월 3주차: 악화

1월 15일

아침:
노트 열기.

습관 트래커 보기:
빈칸 투성이.

“에휴…”

닫기.

1월 18일

데일리 로그:

● 할 일
● 뭔가 해야 함

3줄 쓰고 끝.

1월 21일

3주차 끝.

데일리 로그: 7일 중 2일 작성
습관 트래커: 거의 빈칸
무드 트래커: 안 함

1월 4주차: 포기 직전

1월 22일

노트 안 열었음.

1월 25일

노트 안 열었음.

1월 28일

4주차 끝.

데일리 로그: 7일 중 0일
습관 트래커: 0개 체크
무드 트래커: 안 함

1월 결산:

  • 1주차: 완벽
  • 2주차: 감소
  • 3주차: 거의 안 함
  • 4주차: 완전 안 함

2월: 포기

2월 1일

“2월부터 다시 시작하자!”

먼슬리 로그:
2월 캘린더 그리기.

1시간 소요.

2월 2일

데일리 로그 작성.

2월 3일

데일리 로그 작성.

2월 4일

“오늘은 좀 바빠서…”

안 씀.

2월 5일 ~

안 씀.

불렛저널 종료.

사용 기간: 34일 (실제 기록: 약 15일)

로이텀 노트의 최후

현재:

  • 페이지 1-40: 1월 불렛저널 (미완성)
  • 페이지 41-45: 2월 불렛저널 (3일치)
  • 페이지 46-250: 백지

200페이지 이상 남음.

장비 현황:
– 로이텀 노트: 책장 구석
– 미도리 펜: 필통
– 색펜: 서랍
– 마스킹테이프: 안 뜯음
– 스티커: 안 뜯음

투자금: ₩107,000
사용 기간: 34일
일당 비용: ₩3,147

문제를 분석했다

왜 불렛저널은 한 달도 못 갔을까?

1. 셋업에 너무 많은 시간

셋업: 6시간
실제 기록: 약 3시간 (15일 × 10분)

셋업 > 실제 사용

타임 블록 세우는 데만 시간 쓴 것과 같음.

2.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Pinterest 영향:
– 완벽한 레터링
– 예쁜 레이아웃
– 색깔 조화

내 현실:
– 악필
– 줄 삐뚤
– 색칠 못 함

완벽주의 → 쓰기 꺼려짐

3. 휴대성 문제

디지털:
– 폰으로 어디서든 기록
– 생각나면 바로

아날로그:
– 노트 들고 다녀야 함
– 펜 있어야 함
– 회의 중에 꺼내기 애매

기록 장벽 높음.

4. 수정 불가

디지털:
– 틀리면 수정
– 삭제/이동 자유

아날로그:
– 틀리면 지저분
– 삭제 불가
– 이동하려면 다시 쓰기

실수 부담 → 완벽하게 쓰려 함 → 안 씀

5. 트래커의 함정

습관 트래커:
– 빈칸 = 실패 가시화
– 가시화된 실패 = 죄책감
– 죄책감 = 회피

디지털 습관 트래커랑 똑같은 문제.

6. 이주(Migration)의 귀찮음

불렛저널 핵심: 못 한 할 일은 다음 날로 이주

현실:
– 매일 다시 쓰기
– 같은 할 일 계속 쓰기
– 귀찮음

7. 아날로그 낭만의 착각

기대:
– 손으로 쓰면 집중 잘 됨
– 아날로그 감성
– 디지털 디톡스

현실:
– 손으로 써도 똑같음
– 감성은 며칠만
– 결국 폰 봄

아날로그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처음이라 좋았던 것.

깨달은 것

1. 도구는 안 중요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똑같음.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습관.

2. 예쁜 것 < 쓰는 것

Pinterest 셋업 = 안 씀
그냥 막 쓰기 = 씀

3. 셋업의 함정

셋업 시간 > 사용 시간 = 실패

4. 완벽주의 버리기

완벽한 불렛저널 = 안 씀
불완전한 메모 = 씀

5. 단순함의 힘

인덱스, 퓨처로그, 먼슬리, 데일리, 트래커…

전부 필요 없음.

할 일 적고, 끝.

새로운 방법: 막 쓰는 노트

불렛저널 포기 후:

방법:

  1. 아무 노트나 (다이소 ₩1,000)
  2. 날짜 쓰기
  3. 할 일 쓰기

예시:

11/28

- 프로젝트 마감
- 메일 답장
- 장보기

끝.

인덱스: 없음
퓨처로그: 없음
먼슬리: 없음
트래커: 없음
예쁜 레이아웃: 없음

그냥 메모.

결과:

이전 (불렛저널):
– 셋업: 6시간
– 장비: ₩107,000
– 지속: 34일

현재 (막 쓰는 노트):
– 셋업: 0분
– 장비: ₩1,000
– 지속: 6개월째

107배 저렴하게, 5배 오래 지속.

지금 나의 메모 방법

도구:
– 다이소 노트 (₩1,000)
– 아무 펜

방법:

  1. 아침에 할 일 3개 적기
  2. 하루 끝에 체크
  3. 다음 페이지로

규칙:
– 예쁘게 안 함
– 시스템 없음
– 못 하면 다음 날로
– 빈칸 상관없음

결과:

  • 사용: 매일
  • 스트레스: 없음
  • 생산성: 이전과 같음 (도구 문제 아니었음)

결론: 예쁜 시스템보다 쓰는 습관

불렛저널의 역설:

문제:
– 셋업에 과도한 투자
–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 휴대성/수정 불편
– 트래커 죄책감
– 아날로그 낭만 착각

해결:
– 셋업 0분
– 막 쓰기
– 단순한 도구
– 트래커 없음
– 도구보다 습관

10만원 들여서 예쁜 불렛저널 만들고 한 달 쓰는 것보다,
1000원 노트에 막 쓰고 1년 쓰는 게 100배 낫다.

가장 좋은 불렛저널은 그냥 쓰는 노트다.

시스템 만들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P.S. 로이텀 노트는 아직 있다. 200페이지 백지. 언젠간 쓰겠지… 라고 했는데 2년째 안 쓴다. 그냥 다이소 노트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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