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협업”이라는 달콤한 약속
Slack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리모트 팀 협업 때문이었다. 이메일보다 빠르고, 카톡보다 전문적이고, 여러 채널로 주제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생산성이 올라갈 거야”라고 믿었다.
처음 몇 주는 정말 좋았다. 질문하면 바로 답이 오고, 파일 공유도 쉽고, 이모지 리액션으로 간단히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다. 마치 모두가 같은 사무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실시간”이라는 바로 그 특성이었다.
알림 지옥: 모든 채널을 다 봐야 한다는 강박
일주일이 지나자 Slack 채널이 15개를 넘어갔다. #general, #random, #project-a, #project-b, #design, #dev, #marketing… 각 채널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었다. 한 시간 자리를 비우면 수백 개의 알림이 쌓였고, 그걸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중요한 공지가 어디 채널에 올라왔을지 모르니까.
결국 하루 종일 Slack을 켜놓게 되었다. 코드를 쓰다가도, 문서를 작성하다가도, 심지어 회의 중에도 Slack 알림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확인했다. Todoist에서 할 일 목록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할 일이 되었던 것처럼, Slack을 확인하는 게 실제 업무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바로 답장 안 하면 무책임하다”는 착각
더 심각한 건 즉각 응답에 대한 압박이었다. 누군가 @mention을 걸면 “빨리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10분만 답이 늦어져도 “혹시 일 안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실시간 협업 도구는 “즉시 응답 = 책임감”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만들어냈다.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답하는 것보다, 일단 빠르게 답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작업—코드 리뷰, 기획서 작성,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노션에서 완벽한 템플릿을 만드느라 실제 작업을 못했던 것처럼, Slack에서 빠르게 답장하느라 정작 본질적인 일을 못하고 있었다.
깊은 집중(Deep Work)이 사라진 하루
Cal Newport의 “Deep Work” 개념을 빌리자면, Slack은 깊은 집중을 가장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도구였다. 한 번 알림이 울리면 최소 5-10분은 집중력을 잃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Slack 알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렸다.
어느 날 시간 추적 앱으로 측정해봤더니, 하루 중 “방해받지 않고 집중한 시간”이 고작 1시간 반이었다. 몰입을 방해하는 건 포모도로 타이머의 25분 알림도 마찬가지였는데, Slack 알림은 그보다 훨씬 빈번했다. 나머지 시간은 Slack 확인, 짧은 답장, 다시 업무로 돌아오기, 또 알림 확인의 반복이었다.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정작 생산적인 결과물은 없었다. Evernote에서 노트만 쌓아두고 활용하지 못한 것과 비슷했다. 협업 도구가 오히려 협업을 방해하는 역설이었다.
채널 정리도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렸다
Slack 채널이 너무 많아지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채널과 덜 중요한 채널을 나누고, 알림 설정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키워드 알림을 설정했다.
하지만 이 “채널 관리”가 또 다른 업무가 되었다. 새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채널 구조를 고민하고, 누구를 초대할지 결정하고, 채널 설명을 작성하는 데 시간을 썼다.
결국 도구를 효율적으로 쓰려는 시도가 오히려 비효율을 만들어냈다. 이건 생산성 도구의 공통된 함정이었다—도구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순간, 본질을 잃는다.
도구가 아니라 사용 방식의 문제
Slack이 나쁜 도구는 아니다. 많은 팀이 Slack으로 효과적으로 협업한다. 문제는 “실시간 = 더 좋다”는 착각이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 즉각 응답이 필요한 건 정말 긴급한 상황뿐이다
– 대부분의 메시지는 1-2시간 후에 답해도 괜찮다
– 깊은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는 알림을 완전히 꺼야 한다
– “Do Not Disturb” 모드는 무책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지금은 Slack 알림을 하루에 2-3번만 확인한다. 오전 업무 시작 전, 점심 후, 업무 종료 전. 캘린더에 Slack 확인 시간을 명확히 블록으로 지정해두는 것도 도움이 됐다. 긴급한 일은 전화로 연락받기로 약속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답장의 질이 올라갔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실시간 소통을 포기했더니, 진짜 생산성이 올라갔다.
결론: 협업 도구는 도구일 뿐
Slack, Teams, Discord—어떤 협업 도구든 도구 자체가 생산성을 만들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규칙과 경계다.
생산성 도구의 역설은 언제나 같다. 도구에 지배당하는 순간, 도구는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방해한다. Slack도, 노션도, 에버노트도, Todoist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가장 생산적인 도구는 “알림 끄기” 버튼일지도 모른다.
화면 시간 앱으로 알림 횟수를 추적하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알림을 측정하는 것보다, 알림을 끄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리마인더를 50개 설정했지만 모두 무시했던 것도 같은 함정이었다. 알림이 많으면, 오히려 모두 무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