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ote를 3년 쓰고 깨달은 것 – 수집가의 함정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

Evernote를 쓰는 3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웹 클리퍼로 기사를 저장하고, 스크린샷을 찍어 올리고, PDF를 첨부하고… 정말 열심히 ‘수집’했다.

지금 내 Evernote에는 2,847개의 노트가 있다.

문제는, 그중에서 다시 본 노트는 아마 50개도 안 될 것이다.

시작은 기대에 찼었다

Evernote는 당시 ‘제2의 뇌’로 불렸다. 모든 것을 저장하고,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다는 개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웹 클리퍼 기능이 환상적이었다.
– 브라우저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체 페이지 저장
– 나중에 읽을 기사들을 모아둘 수 있음
– 영감을 주는 디자인, 유용한 튜토리얼, 참고 자료…

“이제 중요한 정보를 놓칠 일이 없겠어!”

그렇게 시작된 Evernote 수집 생활은 3년간 계속되었다.

문제는 ‘저장’만 하고 끝이라는 것

1. 클리핑은 쉽지만, 다시 보는 건 어렵다

웹 클리퍼는 너무 편했다. 클릭 한 번이면 끝.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저장했다.
– “나중에 읽어야지” → 안 읽음
– “이거 프로젝트에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 까먹음
– “좋은 글이네, 저장!” → 영원히 묻힘

저장한다는 행위 자체가 마치 그 내용을 이미 익힌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실제로는 그냥 디지털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을 뿐이다.

2. 검색이 생각보다 불편하다

“Evernote는 검색이 강력하잖아!”

이론상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 검색어를 정확히 기억해야 함
– 제목을 대충 지었으면 못 찾음
– 태그를 안 달았으면 더 못 찾음
– 결국 스크롤 내리며 육안으로 찾음

2,800개 노트 중에서 원하는 걸 찾는 건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였다.

3. 노트북/태그 구조가 복잡해진다

처음엔 간단했다.
– “업무” 노트북
– “개인” 노트북
– “읽을거리” 노트북

그런데 점점…
– “업무 – 프로젝트A”
– “업무 – 프로젝트B”
– “업무 – 회의록”
– “개인 – 건강”
– “개인 – 재정”
– “읽을거리 – 개발”
– “읽을거리 – 디자인”
– “읽을거리 – 마케팅”

노트를 저장할 때마다 “이거 어느 노트북에 넣지?” 고민하게 되었다.

태그도 마찬가지다. #중요, #나중에읽기, #참고자료, #영감… 태그가 20개가 넘어가면서 태그 관리가 또 다른 일이 되었다.

4. 앱이 무겁고 느리다

특히 모바일 앱이 문제였다.
– 앱 실행 → 로딩 3초
– 노트 열기 → 로딩 2초
– 이미지 많은 노트 → 로딩 5초

빠르게 메모하고 싶을 때, 이 로딩 시간이 치명적이었다. 도구가 느리면 오히려 불안감만 커진다. Slack 알림에 즉시 반응해야 한다는 강박도 비슷한 스트레스였다.

결국 급한 메모는 휴대폰 기본 메모장에 적고, “나중에 Evernote로 옮겨야지”라고 생각했다가 안 옮기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5. 유료 플랜의 압박

무료 플랜의 제한이 점점 불편해졌다.
– 기기 2대 제한
– 월 업로드 용량 제한
– 오프라인 노트 불가

“진지하게 쓸 거면 유료로 가야 하나?”

하지만 연간 8만원을 내면서까지 써야 할까? 실제로 내가 Evernote에서 얻는 가치가 그만큼 되나?

고민 끝에 결론은 “아니다”였다.

결국 깨달은 것: 수집은 생산성이 아니다

3년 동안 2,800개의 노트를 모았다.

하지만 그걸로 뭘 했나?

아무것도 안 했다.

저장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이미 ‘처리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디지털 서랍에 쌓아둔 것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건:
– 얼마나 많이 저장하느냐가 아니라
– 얼마나 자주 다시 보고 활용하느냐

Evernote는 수집 도구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걸 다시 꺼내서 쓰는 시스템은 내가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만들지 못했다.

지금은 이렇게 쓴다

Evernote를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 하지만 용도를 확 줄였다.

현재 시스템:
빠른 메모: 애플 메모 (즉시 열림, 동기화 빠름)
작업용 노트: Obsidian (마크다운, 오프라인, 가벼움)
참고 자료 보관: Evernote (하지만 엄격한 규칙 적용)

Evernote 사용 규칙 (3개만):
1. 저장하기 전에 “이거 정말 다시 볼까?” 자문
2. 저장할 때 반드시 왜 저장하는지 한 줄 메모
3. 주 1회 “읽을거리” 노트북 리뷰 (안 읽은 건 삭제)

이 규칙을 적용한 후, 새로 저장하는 노트 수는 1/10로 줄었다. 캘린더를 빈틈없이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기는 것이 더 생산적인 것처럼, 적게 저장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대신 실제로 다시 보는 비율은 10배 늘었다.

배운 교훈: 도구는 습관을 대신하지 못한다

Evernote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그 강력함이 오히려 문제였다.

“일단 저장해두면 나중에 쓸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실제로 사용하는 습관을 만드는 걸 방해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 저장만 하고 안 보면 의미 없다
– 검색이 강력해도 찾을 생각을 안 하면 소용없다
– 모든 기기에서 동기화돼도 열어보지 않으면 끝이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사용 습관이었다. 노션에서 템플릿 정리에만 집착하며 실제 작업을 못했던 것처럼, 도구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당신의 노트 앱, 수집함인가 작업 공간인가?

한 번 확인해보자.

당신의 노트 앱에:
– 저장한 노트가 몇 개인가?
– 그중 지난 한 달간 다시 본 노트는 몇 개인가?
– “나중에 읽기”로 저장한 글들, 실제로 읽었는가?

만약 저장만 하고 다시 안 본다면, 그건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디지털 수집함일 뿐이다.

Evernote를 3년 쓰고 깨달은 건:
– 수집은 쉽지만, 활용은 어렵다
– 많이 저장하는 것보다, 적게 저장하고 자주 보는 게 낫다
– 도구는 습관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할 일 관리 앱에서 완료율 숫자에만 집착하며 정작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숫자와 통계가 오히려 본질을 가린다. 포모도로 타이머가 25분마다 몰입을 깨뜨린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노트가 훨씬 적지만, 실제로 쓰는 정보는 훨씬 많아졌다.


이 글은 “Productivity Paradox” 시리즈의 두 번째 포스트입니다. 생산성 도구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솔직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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