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이 자동으로 분류되면 편하겠지


“받은편지함이 너무 복잡해.”
“중요한 메일이 스팸에 묻혀.”
“필터만 잘 설정하면 깔끔해질 거야.”
Gmail 필터 기능을 발견했다. 조건에 맞는 메일을 자동으로 라벨링하고 정리해준다. 받은편지함 제로를 위해 2시간씩 이메일만 정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거다. 이메일 정리의 끝판왕.
필터 설정 시작

목표: 받은편지함에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기
첫 번째 필터:
From: noreply@*
→ 라벨: 자동알림
→ 받은편지함 건너뛰기
“좋아, 자동 알림은 따로 보자.”
두 번째 필터:
From: *@newsletter.*
→ 라벨: 뉴스레터
→ 받은편지함 건너뛰기
“뉴스레터도 분리.” 뉴스레터 100개 구독하고 읽은 건 0개였던 일이 생각났다.
세 번째 필터:
Subject: [광고]
→ 라벨: 광고
→ 자동 삭제
점점 신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필터 폭발
필터 목록:
- 자동알림
- 뉴스레터
- 광고
- 쇼핑몰
- 카드사
- 은행
- SNS 알림
- 업무-회사A
- 업무-회사B
- 업무-내부
- 업무-외부
- 구독서비스
- 배송알림
- 예약확인
- 결제영수증
…
47개.
필터만 47개.
“완벽해. 이제 받은편지함은 깨끗해질 거야.”
문제 시작


상황 1: 중요한 메일 실종
거래처에서 계약서 보냈다는데 안 보임.
받은편지함: 없음
검색: “계약서”
“업무-외부” 폴더에 있었음.
자동으로 넘어갔는데 못 봄.
상황 2: 뭘 봐야 할지 모름
아침에 이메일 확인.
- 받은편지함: 3개
- 자동알림: 45개
- 뉴스레터: 12개
- 업무: 28개
- SNS: 67개
- …
총 155개. 어디부터 봐야 하지?
상황 3: 필터 중복
어떤 메일이 라벨 3개에 동시에 걸림.
- 뉴스레터
- 업무
- 구독서비스
“이건 어디서 봐야 하지?”
필터 관리가 일이 됨
새 구독 서비스 가입 시:
- 첫 메일 도착
- “이건 어디로 보내지?”
- 새 필터 생성
- 기존 필터와 충돌 확인
- 라벨 계층 구조 고민
- 필터 수정
시간: 15분
원래 메일 읽는 건 1분이면 됐다.
필터 규칙 수정 시:
“이 필터는 왜 만들었더라?”
“이 조건은 뭐였지?”
47개 필터 중 30개가 뭔지 기억 안 남.
결과: 더 복잡해짐
이전 (필터 없을 때):
– 받은편지함: 모든 메일
– 확인: 위에서부터 차례로
– 처리 시간: 하루 30분
이후 (필터 47개):
– 폴더: 15개
– 확인: 각 폴더 돌아다니며
– 처리 시간: 하루 1시간
– 놓친 메일: 주 3-4개
필터가 늘어날수록 관리가 힘들어졌다. 자동화 워크플로우 100개 만들었던 경험과 똑같았다.
분석: 왜 실패했을까
1. 과분류의 함정
47개 필터 = 47개 결정 포인트
분류가 많을수록 “어디 봐야 하지?” 고민 증가.
2. 자동화의 역설
자동으로 처리되면 = 신경 안 씀 = 놓침
수동으로 확인하던 게 더 확실했다. AI 비서에게 모든 걸 맡기려다 실패했던 이유와 같은 문제였다.
3. 규칙 유지 비용
필터는 한 번 만들면 끝이 아니다.
- 발신자가 바뀜
- 조건이 안 맞음
- 새 유형 등장
지속적인 관리 필요. IFTTT 자동화 설정만 하다 끝났던 기억이 났다.
4. 완벽주의
“모든 메일을 완벽하게 분류하자”
이 목표 자체가 문제였다.
새로운 방식: 3개 라벨

필터 47개 → 3개로 줄임
규칙:
1. 나중에 (읽었는데 나중에 처리할 것)
2. 대기중 (답장 기다리는 것)
3. 참조 (보관만 할 것)
나머지: 받은편지함에서 바로 처리하고 아카이브. 받은편지함 제로 만들었는데 다음날 100개 온 경험에서 배웠다.
필터:
From: *@newsletter.* OR *@marketing.*
→ 자동 삭제 (읽지도 않을 거)
1개.
현재 이메일 처리 방식
아침:
1. 받은편지함 확인 (5분)
2. 바로 처리할 것 처리
3. 나중에 할 것 → “나중에” 라벨
4. 아카이브
저녁:
1. “나중에” 라벨 확인 (10분)
2. 처리하고 아카이브
총 시간: 15분
이전 (필터 47개): 1시간
비교
필터 47개:
– 설정 시간: 5시간 이상
– 일일 처리: 1시간
– 놓친 메일: 주 3-4개
– 스트레스: 높음
필터 1개:
– 설정 시간: 5분
– 일일 처리: 15분
– 놓친 메일: 0개
– 스트레스: 없음
단순함이 이겼다.
깨달은 것
1. 분류 < 처리
이메일의 목적은 분류가 아니라 처리다.
완벽하게 분류해도 처리 안 하면 의미 없다.
2. 자동화 = 무관심
자동으로 처리되면 신경 안 쓰게 된다.
중요한 건 수동으로 확인해야 한다.
3. 규칙은 부채
규칙 1개 = 유지 비용 1개
규칙이 많으면 부채가 늘어난다.
4. 받은편지함 = 할 일
받은편지함을 할 일 목록처럼 쓰면 된다.
처리하면 아카이브. 끝.
지금 드리는 조언
이메일 필터 만들려는 분께.
1. 3개 이하로
라벨은 3개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관리 비용이 이득을 넘는다.
2. 자동 삭제만
필터는 “삭제”에만 쓰자.
광고, 스팸, 읽지 않을 뉴스레터.
3. 폴더 분류 X
폴더를 많이 만들지 마라.
검색이 더 빠르다.
4. 받은편지함 = 할 일
읽고 처리하면 아카이브.
남아 있으면 아직 안 한 것.
결론: 필터보다 처리가 먼저다
이메일 필터의 역설:
문제:
– 필터가 많으면 관리가 일이 됨
– 자동 분류 = 안 보게 됨
– 어디 봐야 할지 모름
– 중요한 메일 놓침
해결:
– 필터 3개 이하
– 자동 삭제만 사용
– 받은편지함에서 바로 처리
– 검색 활용
47개 필터로 완벽하게 분류하는 것보다,
1개 필터로 단순하게 처리하는 게 100배 낫다.
가장 좋은 이메일 정리법은 바로 처리하고 아카이브하는 것이다.
필터 만들지 말고, 그냥 읽고 처리하면 된다.
P.S. 47개 필터는 아직 남아있다. 삭제하려니 “혹시 필요하면?”이란 생각에. 나중에 읽기에 저장만 하고 읽지 않았던 것과 같은 디지털 수집광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