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포모도로 테크닉”—25분 집중하고 5분 쉬고, 4회 반복 후 긴 휴식.
생산성 유튜브를 보면 모두가 이걸 추천한다. “집중력이 약한 사람도 25분은 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몰입하면 효율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시작했다. Forest 앱을 깔고, Focus To-Do를 설치하고, 심지어 물리적인 포모도로 타이머까지 샀다.
처음 며칠은 신기했다. 타이머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집중하고, 25분이 지나면 뿌듯한 마음으로 나무 하나를 심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나자,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타이머가 울리는 순간, 몰입이 깨진다
가장 큰 문제는 타이머가 울리는 순간 집중이 완전히 깨진다는 것이었다.
코드를 작성하다가 막 흐름을 타는 순간—딩동! 25분 완료.
글을 쓰다가 문장이 술술 나오기 시작하는데—띵! 휴식 시간.
“지금 막 집중이 되고 있었는데…”
하지만 타이머는 냉정했다. “25분 끝났으니 쉬어야 합니다.”
포모도로 테크닉의 원칙은 명확하다. 타이머가 울리면 무조건 5분 쉬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25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문제는, 나는 지금 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Slack에서 끊임없는 알림 때문에 집중을 잃었던 것처럼, 포모도로 타이머도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25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
더 이상한 건, 포모도로를 쓰면서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25분 안에 끝내야 해.”
“지금 20분 지났는데 아직 반도 못했네.”
“타이머 울리기 전에 이 부분만 끝내자.”
원래 목적은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시간에 대한 불안감만 커졌다.
중요한 작업일수록 25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작업은 몇 포모도로가 필요할까?” 계산하기 시작했다. 캘린더에서 15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타이머 관리가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렸다
Forest 앱을 쓰면서부터는 더 심해졌다.
- 오늘 몇 그루 심었는지 확인
- 나무 종류 고민 (집중 시간에 따라 다른 나무가 자란다)
- 통계 확인 (일일/주간/월간 집중 시간)
- 친구들과 순위 비교
- 완료한 포모도로 개수 체크
나무를 심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화면 시간 앱으로 1분까지 추적하며 통계 확인에 중독됐던 것처럼, Forest 통계를 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중독이 되었다.
정작 중요한 건 실제 작업의 결과물인데, 나는 “오늘 포모도로 10개 완료!”에 만족하고 있었다. Todoist에서 완료율 숫자에만 집착하며 중요한 일을 미뤘던 것과 똑같았다.
휴식마저 의무가 되었다
“5분 쉬세요”—타이머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쉬고 싶지 않다.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데, 지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억지로 쉬었다. “규칙을 따라야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까.
5분 동안 뭘 할까?
– 휴대폰 보기 → SNS에 빠져서 10분 지남
– 스트레칭 → 1분이면 끝남, 나머지 4분은?
– 물 마시기 → 30초면 충분
휴식조차 타이머에 맞춰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진짜 필요한 건 “25분 일하고 5분 쉬기”가 아니라, 내 몸이 원할 때 쉬는 것이었다.
리마인더 50개를 설정했지만 모두 무시했던 것처럼, 알람이 많으면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
몰입(Flow)을 방해하는 25분 법칙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 이론을 보면, 깊은 집중 상태에 들어가는 데 평균 15-20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포모도로는 25분 만에 끊는다.
겨우 몰입 상태에 진입했는데, 타이머가 “이제 쉬세요”라고 한다.
특히 창의적인 작업—글쓰기, 코딩, 디자인—을 할 때는 몰입이 핵심이다. 한번 끊기면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결국 포모도로는 단순 반복 작업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깊은 사고가 필요한 작업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결국 타이머를 버렸다
2주 만에 포모도로를 포기했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자연스러운 리듬 따르기”
– 집중되면 계속한다 (25분에 멈추지 않음)
– 막히면 쉰다 (타이머 없이)
– 피곤하면 더 긴 휴식 (5분 고집 안 함)
처음엔 불안했다. “타이머 없이 어떻게 집중하지?”
하지만 놀랍게도, 타이머가 없을 때 더 오래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사라지자, 작업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집중했고, 어떤 날은 10분마다 휴식이 필요했다.
중요한 건 기계적인 25분이 아니라, 내 몸의 리듬이었다.
배운 교훈: 도구가 당신을 통제하게 하지 마라
포모도로 테크닉이 나쁜 방법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생산성 도구의 공통된 함정:
– 도구가 목적이 된다 (나무 심기가 목표가 됨)
– 숫자에 집착한다 (포모도로 개수 경쟁)
– 몸의 신호를 무시한다 (쉬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휴식)
– 몰입을 방해한다 (25분마다 끊김)
가장 생산적인 건 타이머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을 아는 것이다.
지금은 타이머 없이 작업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스트레스가 줄었다.
포모도로를 2주 만에 버린 건 실패가 아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은 과정이었다.
당신에게 맞는 집중법을 찾아라
한 번 생각해보자.
- 타이머가 울릴 때 안도감이 드는가, 짜증이 나는가?
- 25분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가?
- 포모도로 개수를 세는 게 동기부여인가, 스트레스인가?
- 억지로 쉬는 게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만약 포모도로가 스트레스라면, 버려도 괜찮다.
생산성의 본질은 얼마나 많은 포모도로를 완료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했느냐다.
타이머 없이도, 앱 없이도, 나무 심기 없이도—당신은 충분히 집중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생산성 도구는, 당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