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관리 앱에서 카드만 옮기고 프로젝트는 진행 안 했다

“프로젝트 관리 툴을 쓰면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어”

프로젝트 관리 툴을 쓰면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어

부업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프로 개발자들처럼 체계적으로!”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Trello로 프로젝트 관리하는 법”
“Asana로 팀 협업 효율 200% 높이기”

화면에 나온 칸반 보드들—To Do, In Progress, Done 칼럼에 깔끔하게 정리된 카드들.

“이거다! 이렇게 관리하면 프로젝트가 저절로 완성되겠네!”

그날 바로 Trello를 깔았다.

완벽한 보드를 만드는 데 하루를 썼다

보드 구성에 열정을 쏟았다.

칼럼 구조:
– 📝 Backlog (아이디어 수집)
– 📋 To Do (해야 할 것)
– 🏃 In Progress (진행 중)
– ✅ Done (완료)
– 🗑️ Archived (보관)

레이블 시스템:
– 🔴 긴급
– 🟡 중요
– 🟢 일반
– 🔵 나중에
– 🟣 개선사항

카드 템플릿:

## 작업 내용
[설명 입력]

## 체크리스트
- [ ] 서브 태스크 1
- [ ] 서브 태스크 2

## 예상 시간: 2시간
## 실제 소요: [입력]

보드를 만드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완벽해! 이제 프로젝트가 술술 진행되겠지?”

카드를 만드는 게 일이 되었다

카드를 만드는 게 일이 되었다

매일 아침, Trello부터 열었다.

“오늘은 뭘 해야 하지?”

그런데 To Do를 보니 카드가 너무 애매했다.

  • “홈페이지 만들기” → 너무 크다. 세분화 필요!
  • “디자인 작업” → 뭘 디자인한다는 거지?

그래서 카드를 쪼개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만들기” 카드를:
– 홈페이지 – 와이어프레임
– 홈페이지 – 디자인 시안
– 홈페이지 – HTML/CSS 작업
– 홈페이지 – 반응형 구현
– 홈페이지 – 배포

하나의 카드가 5개로 늘어났다.

마인드맵 앱에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실행은 못 했던 것과 비슷하게, Trello에서도 카드 정리가 실제 작업을 대체했다.

30분 동안 카드 10개를 만들고 나면, 뿌듯함과 동시에 피곤했다.

“오늘도 열심히 했네!” (실제 작업: 0개)

브라우저 탭을 그룹으로 분류하는 데 시간을 쏟았지만 탭은 줄지 않았던 것처럼, 분류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카드를 옮기는 게 진척이라고 착각했다

카드를 옮기는 게 진척이라고 착각했다

매일 저녁, 보드를 업데이트했다.

  • “홈페이지 – 와이어프레임” 카드를 To Do → In Progress로 드래그
  • “로고 디자인” 카드에 체크리스트 하나 체크 ✅
  • “콘텐츠 작성” 카드에 댓글 추가

“오늘도 3개 카드 진행했네!”

하지만 실제로는:
– 와이어프레임: 손도 안 댐. 그냥 “시작했다”는 의미로 옮김
– 로고 디자인: 레퍼런스만 저장함
– 콘텐츠 작성: “나중에 써야지” 메모만 남김

습관 트래커에서 체크박스만 채우고 실제 습관은 안 만들어졌던 것와 마찬가지로, 카드를 옮기는 행위 자체가 진척처럼 느껴졌다.

‘In Progress’ 칼럼만 카드가 쌓였다

2주 후, 보드를 보니 문제가 명확했다.

To Do: 8개
In Progress: 23개 ⬅️ 이게 문제
Done: 2개

“진행 중”이 23개라는 건, 실제로는 아무것도 진행 안 된다는 뜻이었다.

카드들을 열어보니:
– 2주 전에 “In Progress”로 옮긴 카드들
– 체크리스트는 10% 정도만 체크
– 마지막 활동: 10일 전

카드만 옮겨놨지, 실제 작업은 안 했다.

목표 달성 앱에서 진척도만 업데이트하고 목표는 달성 못 했던 것에서도 보았듯이, 시각적 진척과 실제 진척은 달랐다.

보드 관리가 또 다른 프로젝트가 되었다

3주차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

“보드가 너무 지저분해. 정리해야겠다!”

그래서:
– 레이블 체계 재정비
– 카드 우선순위 재조정
– 오래된 카드 아카이빙
– 새로운 칼럼 추가 (“Review” 단계 필요할 것 같아!)
– Power-Up 추가 (캘린더 연동, 시간 추적 등)

보드 정리에 2시간 썼다.

“이제 깔끔해졌으니 작업이 잘 될 거야!”

하지만 다음 날 보니 또 복잡해졌다. 그리고 또 정리했다.

Trello 관리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협업 기능은 더 큰 함정이었다

“혼자 하니까 안 되는 거야. 팀으로 하면 서로 책임감이 생기겠지!”

친구를 보드에 초대했다.

  • 카드에 멤버 할당
  • 마감일 설정
  • 댓글로 소통
  • 알림 받기

But:
– 친구: “이 카드는 네가 하는 거 아니야?”
– 나: “아니, 네가 먼저 디자인 끝내야 내가 할 수 있지”
– 친구: “그럼 내 카드 먼저 Done으로 옮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카드 할당, 의존성 관리, 알림 체크에 시간을 쓰다 보니, 실제 작업할 시간이 없었다.

완벽한 일정 관리로 캘린더만 색칠하고 실제 실행은 못 했던 것를 떠올리게 하는데,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실행은 멀어졌다.

포스트잇과 노트가 더 효과적이었다

한 달 후, 급한 마감이 생겼다.

“내일까지 완성해야 해!”

Trello 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상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해야 할 것]
1. 로고 완성
2. 홈페이지 메인 섹션 3개
3. 배포

[완료]
(여기로 옮기기)

놀랍게도:
– 로고: 2시간 만에 완성
– 홈페이지: 5시간 만에 메인 3개 섹션 완성
– 배포: 1시간 만에 완료

하루 만에 끝났다.

Trello에서 한 달 동안 못 한 걸, 포스트잇으로 하루 만에 끝냈다.

차이점:
– Trello: 카드 만들고, 레이블 붙이고, 칼럼 옮기고…
– 포스트잇: 적고, 하고, 옮기기

단순함이 이겼다.

프로젝트 관리 앱을 지우고 나서

Trello를 삭제했다.

“이렇게 좋은 툴을 왜 지워?”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툴이 나쁜 게 아니라, 내게 독이 되었기 때문이야.”

Before (Trello 사용):
– 시간: 매일 30분씩 보드 관리
– 카드: 50개 넘게 생성
– 완료: 5개
– 프로젝트 진행도: 20%

After (포스트잇 + 간단한 메모):
– 시간: 5분 안에 할 일 적기
– 메모: 3-5개만 유지
– 완료: 매일 2-3개씩
– 프로젝트 진행도: 80%

시간 추적 앱에서 숫자만 보고 실제 성과는 못 봤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프로젝트 관리 앱도 시각적 환상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프로젝트 관리 앱 대신:

1. 오늘 할 것 3개만 적기
– A4 용지 / 노트 / 심플한 텍스트 파일
– 3개 이상은 적지 않음 (과욕 방지)
– 다 하면 내일로

2. 복잡한 건 종이에 그리기
– 플로우차트, 의존성 등
– 한눈에 보이면 OK
– 디지털화 필요 없음

3. 진짜 중요한 것만 추적
– “카드 개수”가 아니라 “실제 완료”
– “칼럼 이동”이 아니라 “작동하는 결과물”

핵심: 관리보다 실행에 시간을 쓰는 것

배운 교훈: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실행은 줄어든다

프로젝트 관리 앱이 나쁜 건 아니다. 큰 팀, 복잡한 프로젝트에는 필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과했다.

Trello를 쓰면서:
실행보다 관리에 시간을 더 썼고
결과물보다 카드 정리가 목적이 되었고
진척보다 시각적 만족을 추구했다

IFTTT로 자동화 레시피 만드는 데 시간을 다 쓴 것도 같은 함정이었다. 도구 설정이 진짜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웹사이트 차단 앱으로 집중력을 강제하려다 오히려 차단 해제에 시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부 통제는 내부 동기를 대체할 수 없었다.

SMART 목표 15개를 완벽하게 세웠지만 하나도 달성 못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이 완벽할수록 실행은 멀어졌다.

프로젝트 관리의 진짜 목적은:
– 예쁜 보드 만들기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
– 카드 옮기기가 아니라
실제로 작업하는 것

독서 앱에서 책 등록만 하고 읽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문제였는데, 프로젝트 관리 앱도 행동보다 기록을 우선시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 정말 프로젝트 관리 앱이 필요한가?

한 번 생각해보자.

  • 보드 관리 시간 vs 실제 작업 시간?
  • 카드를 옮기는 것 = 진척인가?
  • 카드 100개 vs 완료 3개라면?
  • 포스트잇 3장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만약 프로젝트 관리 앱이 실행을 방해한다면, 버려도 괜찮다.

가장 좋은 프로젝트 관리 도구는:
– 화려하지 않아도
– 레이블 시스템 없어도
– 칸반 보드 없어도

프로젝트를 실제로 완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그게 책상 위 포스트잇 3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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